요나서 강해

요나서 강해(1): 요나서 서론(1:1)


  우리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에서 요나 선지자와 물고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습니다. 비교적 선지서 들이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요나서는 내용도 짧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 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일학교에서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통을 강조하는 교단에서는 선지서를 잘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비교적 그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또 사회정의와 같은 개혁적인 주장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교단은 선지서들을 매우 많이 연구하고 또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나서는 어느 교단이든지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와는 달리 내용도 짧고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와는 다른 면이 많습니다. 다른 선지서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죄악을 지적하고, 그 죄로 인하여 나라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나라의 멸망이 아닌 (여로보암 2세를 통한) 영토 확장을 예언했고, 자기 나라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다른 나라(앗수르)의 심판을 예언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고 요구한 반면에, 요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니느웨를 용서하시자 그 용서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요나가 회개한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에게 자신이 니느웨를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1) "네가 화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4)

 2) "네가 이 넝쿨로 인하여 화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9).

 3) "회개한 앗수르를 살려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11).

 

  하나님은 이러한 세 가지 질문들을 통해서 요나의 옹졸함과 편협된 마음을 지적해 주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이 되면 회당에서 요나서를 읽었습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년 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대속죄일은 매우 귀중한 날입니다. 이 날에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하는 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그 때에 회당에서는  요나서가 읽혀졌으며, 요나서를 들은 회중들은 "우리는 요나와 같으니이다."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속죄하는 그 날에 요나서를 읽으면서 자신들이 바로 요나와 같이 불순종하며 살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한 요나와 멸망해야만 할 앗수르가 회개하였을 때에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 자신들이 회개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하신 내용을 설교 제목으로 정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회개한 민족을 아끼는 것이 "어찌 핟당치 아니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성도님들과 함께 요나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항거하는 요나를 설득하시는 국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생각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요나서의 배경(1:1)

  우리는 (왕하 14;25)을 통해서 요나가 활동하던 때가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왕하 14:25)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 14:25)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서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드헤벨에서 출생했습니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엘리야가 살린 과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왕상 17:8-24).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하였으며 그는 여로보암 2세가 북쪽 원정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민족의 앞날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예언을 했지만, 요나는 조국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같은 낙관적인 예언을 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요나는 어린 시절을 여로보암의 부친인 요아스 시대에 보내었고, 성인 시절은 여로보암 2세가 전 솔로몬의 영토를 회복한 부흥기에 살았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이러한 시기는 솔로몬 이후 다시 한 번 그 영광을 재현했던 여로보암 2세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때에 자신들이 번영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3. 제 1막 3장: 하나님의 징계(1:4-16)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요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주권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타고 가던  배에 큰 파도와 풍랑이 일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가 탄 배는 바람과 파도에 의해 심히 흔들리게 되었고, 거의 깨어지기 직전에 놓였습니다. 선원들은 죽음이 눈앞에 이르게 되자, 공포에 휩싸여 각자 자기들이 믿는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를 가볍게 해보려고 배의 짐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신을 거부하다가도 불가항력적인 일을 만나면 신을 찾게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요나는 배의 밑에 있는 선실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 배에 탄 한 사람(선장이나 선임자)이 배 밑에서 자고 있는 요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즉시 요나를 깨워서 그가 믿는 신에게 위험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들의 관습대로 제비를 뽑아서  이 풍랑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 사람씩 제비를 뽑았으며, 그 결과 요나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요나는 이 풍랑이 바로 자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요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의 직업이 무엇이며,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물어 보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며, 자신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나에게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요나는 그 풍랑이 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를 구원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노를 저어서 배를 육지로 돌려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바람과 파도는 더욱 거세어져 갔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마침내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순간 바다를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이를 본 선원들은 심히 두려워하여 즉시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습니다(1:16). 하나님은 미리 큰 물고기를 준비해 놓으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그 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보내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교회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명령을 거역한 찾아 배 밑까지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를 동원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처럼 행동하지만, 교회를 벗어나 가정이나, 직장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영역에 미친다는 것을 알지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입니다.

 

요나서 강해(2): 거역하는 요나에게 임한 징계(욘 1장) 

 

1. 제 1막 1장: 하나님의 명령(1:2)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1:2)

 

  당시의 니느웨 성은 앗수르의 수도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니느웨 성이 걸어서 삼일 길이라고 했는데,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이 성은 주위가 약 144km정도나 되며, 가로 세로가 약 45k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이 크기는 서울 전체의 크기보다 약간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은 삼면이 강으로 쌓여있고 한쪽에는 산으로 되어있는 천연적인 요새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성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하여 심판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심과 주권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닌 모든 민족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의 죄악까지도 헤아리고 또한 그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계시며, 그의 죄에 대해서도 심판하시는 모든 인류의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2. 제 1막 2장: 거역하는 요나(1:3)

  그러나 요나는 이 명령을 받은 후에 그 명령을 거역하기 위해서 요나 당시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의 탈레수스(다시스)로 가려고 욥바에서 배 삯을 지불하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요나가 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였을까요?

 

 1) 요나 당시에 유대인들은 누구나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이방에 가서 심판을 선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였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해서 심판을 선언해도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잔인한 이방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일은 위험하기도 하고, 또 조롱 받기에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요나는 이 명령을 받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명령인가? 하며 당황했을 것입니다.

 

 2) 또한 요나는 당시에 이스라엘을 가장 위협했던 잔인한 나라인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원했습니다(욘 4:2). 요나는 자기 민족이 부흥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속하여 부흥하고, 자기들을 위협하는 앗수르는 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자신이 앗수르에 가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을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전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모스나 호세아는 이미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앗수르가 장차 이스라엘을 칠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이므로 앗수르가 장차 자기 나라를 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앗수르는 오랫동안 이웃 나라들에 대하여 매우 포학하게 대한 잔인한 나라였습니다. 앗수르군이 한 번 점령한 지역은 예외 없이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포로들의 해골로 피라밋을 쌓거나, 산채로 그들의 몸에서 껍질을 벗기고, 갈비를 뜯어내었고, 때로는 사람을 코울타르에 끓여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욥 4:2). 그러므로 요나는 그들이 용서받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려고 했습니다.

요나서(3): 요나의 회개와 두 번째 명령(욘 2-1:3:4)


1. 제 1막 4장: 요나의 회개와 구원(2:1-10)

  요나서 2장에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받은 후에 자기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물고기 배속에서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자신을 바다에 던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큰물이 요나를 둘러 쌌으며, 파도와 물결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다시 성전에 서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깊은 물 속으로 떨어져 바다 풀들이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의 맨 밑뿌리(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그 속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물고기를 보내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전보다 더욱 더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피와 끈끈한 진액과 창자를 뒤집어쓰고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빛 하나 없는 암흑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사흘 동안의 기간을 요나가 뱃속에서 지낸 사흘동안의 기간에 비교를 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거역했던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에 도전하면 요나를 죽음의 고통으로 내모셨고, 이로 인해 요나는 자신의 고집을 꺾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2:7-).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서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갚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2. 제 2막 1장: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3:1-4)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두 번째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3:1) 이것은 마치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던 주님의 음성과도 같았습니다. 바다 속에서 지옥과 같은 경험을 한 요나는 더 이상 주님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가 서원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니느웨로 갔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가 41년(주전 793년-753년)이라는 매우 긴 기간을(왕하 14:23) 통치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정확히 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1) 일부 학자들은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시기를 주전 약 800년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때에 앗수르의 황제인 아닷니라리 3세(주전 810-783년)는 네보 신을 숭배했으며, 유일신 사상을 옹호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닷니라리 3세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유일신을 섬기게 되었다고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더 많은 학자들이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시기가 주전 약 760년경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앗수르의 상황이 요나의 방문을 환영 할만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앗수르는 국가적으로 매우 의기소침해 있었으며, 백성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네보신을 숭배했던 아닷니라리 3세는 28년을 다스린 후에 후계자 없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살만에셀 4세가 이어 받았고, 또 그 뒤를 아수르단이 이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왕은 매우 나약하였기 때문에 앗수르는 국력이 매우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 주전 765년경에는 그 땅에 큰 역병이 덮쳤습니다. 이 역병으로 인해 수많은 앗수르 백성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전 763년 6월 15일에는 일식이 임해 백성들 사이에 큰 두려움이 만연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들은 자신들이 신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때에 요나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를 들은 앗수르 백성이 회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요나가 니느웨를 방문한 때가 주전 760년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기 약 40년 전이었습니다. 니느웨는 3일을 걸어가야 다 돌 수 있는 매우 큰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단지 하루 길만을 걸으면서 이렇게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요나서(4): 앗수르인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욘 3:5-4:4)"


1. 제 2막 3장: 앗수르인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3:5-10)

  이 메시지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였으며, 어른부터 아이까지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앗수르 왕에게 들리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왕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마무 것도 입에 대지 말되,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  니느웨의 왕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악한 앗수르인들이 이렇게 회개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앗수르에는 매우 심약한 왕이 통치했으며, 심각한 전염병들이 나돌았고, 여러 가지 심판을 의식하게 하는 위협과 분위기가 나라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요나가 전한 메시지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는 이미 한 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한 번 하나님을 거역하고 지옥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하나님의 징계를 직접 받았습니다. 아마 이때에 요나의 몸에서는 아직도 생선 비린내가 안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풍랑이 이는 바다에 던져져 땅 끝까지 들어가 3 일 밤낮을 고생하던 요나는 확신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앗수르 백성들을 회개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이 바다에 빠진 것과 같이 니느웨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햇을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적인 그의 메시지는 분명히 앗수르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셋째 이유는 바로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회개할 수 있는 심령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민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요나를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메세지를 전할 때에 그들에게 겸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 없이 이토록 철저하게 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앗수르 사람들이 그토록 완전하게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와 같이 회개하게 되자 그들을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욘 3:1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2. 제 2막 4장: 요나의 첫 번째 항의와 하나님의 대답(4:1-4)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게 되자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는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욘 4:1-2). 그러면 그가 왜 이렇게 하나님께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분노를 터뜨리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용서하신 앗수르는 잔인하고 악독했으며, 이스라엘의 원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앗수르가 이 기회에 멸망하기를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욘 4;20)에서 이렇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4:2-출 34;6 참조)

 

  둘째로 요나는 자기가 선포한 메시지가 시행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싫다고 하는 요나를 억지로 끌어다가 앗수르에 가서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와 같이 그 앗수르를 심판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선언한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선지자들이 말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그를 거짓 선지자로 알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요나도 그가 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요나는 원수인 앗수르를 살려줌으로서 장차 자기 나라를 칠 언수를 살려주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원수를 이롭게 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가서 메세지를 전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요나는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 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

요나서(5): 요나의 항의와 하나님의 대답(4:5-11)


1. 행동으로 표현된 요나의 항의와 하나님의 응답(4:5-11)

  말로 항의를 하는 것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요나는 이번에는 행동으로 하나님께 항의를 개시했습니다. 그는 아예 니느웨 성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까지도 니느웨 성의 심판이 연기되었을 뿐 아주 철회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치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떠났듯이 심판 받을 니느웨 성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성의 동편에서 천막을 치고, 그 그늘 아래 앉아 그 성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세 가지 행동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박 넝쿨을 자라게 해서 요나의 머리 위를 가리워 주셨습니다. 이 식물은 모래 속에서 자라는 식물로서 그늘을 만들 수 있는 큰 잎을 가졌으며, 며칠 새에 크게 성장하는 식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 잎을 통해 요나의 머리에 그늘을 만들어 그의 고통을 덜어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튿날 새벽에 벌레를 준비하여 박 넝쿨을 씹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가 그토록 기뻐하던 박 넝쿨은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보던 요나는 잠시 가졌던 희망도 잃고 말았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소금 성분이 있는 매우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으로 요나에게 불게 하셨으며, 뜨거운 태양이 요나의 머리 위를 비추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정신이 혼미하게 되어 차라리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요나는 하나님께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러나 요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성내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합당합니다." 아마 그는 다른 사람일지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모두 다 화를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요나를 향해 질문 하셨습니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배양하지도 않았으며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이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은 요나가 박넝쿨 하나를 이렇게 귀중히 여기는 것을 보시고,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12만 명(전 인구는 약 60명)이나 살고 육축들도 많이 사는 이 성읍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요나서에는 이 질문에 대해 요나가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이 대답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요나가 처한 환경에 있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요나가 그늘을 만들어 준 박 넝클을 그렇게 사랑했다면,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만(7세 이하) 12만 명이 살고 육축도 많은 니느웨 성을 아끼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저도 역시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요나서의 교훈과 적용


 1) 하나님의 주권

  요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민족에게 미치며, 또 어디에나 미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원수 날인 앗수르의 죄악까지도 살펴보셨으며,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심지어 우리 모두가 그 사람만은 당연히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뿐만이 아니라, 배에서도 바다에서도 또 물고기 뱃속에서도 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교회라고 부르면서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 밖을 나가서 가정으로 가고, 학교로 가고, 직장으로 나가면 마치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 뱃속에까지도 주님의 주권이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고, 어디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며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시 139편 참조).

 

  또한 하나님의 주권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다고 한 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거역하다가 회개할 때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아마 요나가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요나 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반대쪽으로 도망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를 떠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풍랑 이는 바다와 물고기를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고, 있으라고 한 자리에 신속히 돌아가서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   

  두 번째로 요나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인간의 좁은 마음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심판을 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보내셔서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안 요나는 일ㄹ 이행하지 않기 위하여 온갖 반항을 하며 도망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요나의 발걸음을 앗수르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거민들이 그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만 택한 백성이라는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일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통하여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요나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끝까지 죽여달라고 하면서 항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악인이 만일 그 행한 것에서 돌이켜 떠나 내 율례를 지키면...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겠느냐?"(겔 18;21-22) 이러한 이야기는 예레미야서에서도 나타납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기로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킬 것이라"(렘 18:7-8) 대 속죄일에 요나서를 읽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습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게속하여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옹졸한 마음과는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 잔인한 앗수르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집에서 화초를 키우시거나, 금붕어를 키운다고 합시다. 여러분들이 정성을 다해서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해서 잘 자라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매우 기쁠 것입니다. 혹시 그것들 중에 병이 나거나, 아파 보이면 여러분들의 마음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누가 그것을 죽여버렸다면 여러분들은 매우 화가 날 것입니다. 바로 요나가 박 넝쿨이 없어졌을 때 화를 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들이 이와 같은 풀 한 포기와, 물고기 몇 마리를 그렇게 애지중지한다면, 12만 명의 생명과 수많은 육축들을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이 합당치 않은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키우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창녀나 죄인들이 주님께 돌아올 때에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불의를 행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고 자기 생명을 드려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원수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항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

 

 3) 선교와 전도의 필요성

  또한 우리가 읽은 요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자신들만을 선택하셨고, 다른 민족들은 저주를 받은 민족이라는 배타적인 생각에 쐐기를 박아주는 책입니다.  요나는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앗수르는 당연히 멸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스겔서에서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파수꾼이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지 않아서 피습을 당하면 그 피 값을 파수꾼에게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파숫꾼이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서 경계 경보를 울렸다면 적들에게 공격을 당해도 그 파수꾼은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에게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해 주신 모든 명령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마 28:18-20). 그러나 교회들이 이 명령을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마치 요나와 같이 우리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 이 명령에 거역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도 풍랑과 물고기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우리를 복음 전선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즉시 모든 족속을 찾아가서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일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지상 명령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참여해야 하며, 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든지, 아니면 보내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든지 해야합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공의와 크신 사랑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거역했던 하나님의 명령이 없는지 찾아보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것처럼 이웃들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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